명령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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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인은 자동차와 관련된 딜레마에 대해 고민해보다가, 옳은 일을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어떤 간단한 규칙이나 명령이 없을까 궁금해졌다. 한 가지 출발점은 명백했다. 이 세상의 법이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가? 법은 무엇인가?

 

법적으로 웨인이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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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인은 (뉴질랜드의)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차량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6개의 보장 항목이 제공되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항목은 판매되는 차량의 품질이 반드시 합격품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매되는 차량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 그 종류의 차량이 주로 쓰이는 용도에 적합해야 한다.
  • 마감과 외관에 있어 합격품질이어야 한다.
  • 부수적인 결함이 없어야 한다.
  • 안전해야 한다.
  •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즉, 구매 이후 적정 기간 동안 차량의 일반적 용도에 맞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 합격품질 여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차량의 수명과 가격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구매 이후 "적정" 기간이라 여겨지는가? 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웨인의 법적 의무는 정확히 규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웨인이 판매한 캠리처럼 출고된 지 7년이 지났으며 주행 거리가 평균 정도인 경우, 3개월 혹은 5,000킬로미터 정도가 웨인에게 자동차를 법적으로 수리할 의무가 있는 "적정" 기간이라고 여겨진다. 고객이 6개월 혹은 12개월을 "적정"하다고 생각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2개월과 같이 긴 기간은 인정받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

 

   웨인은 고객에게 12개월 동안 주행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본다. 돌아오는 대답은 22,000킬로미터였다. 이는 웨인이 그 결함을 수리해주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판매 후 경과한 시간이나 주행한 거리를 보아도 자동차가 보증되는 "적정한" 수준은 훨씬 넘어선 것이다.

 

 

법적 혹은 도덕적 명령?

 

   웨인은 자신에게 수리비용을 대주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없다는 사실에 만족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웨인은 적법성과 도덕성이 같은 이슈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사항을 정의하는 것이다. 웨인은 최근에 친구가 이야기해준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어떤 회사의 이사회가 경영 제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제안이 합법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얼마 안 가서 그 계획에 법적인 문제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한 이사가 입을 열었다. "합법적이긴 하죠. 하지만 옳은 것입니까?"

 

   웨인의 친구가 말했다. “그 질문이 제기되자마자, 긴 침묵이 이어졌지. 다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해 논의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있었어.”

 

   웨인은 법 조항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넘어서 생각하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가 따라야 하는 더 높은 기준은 무엇일까? 한때 서구 사회에서는 기독교적 윤리가 더 높은 기준을 제시했으며 ‘보편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널리 인정되었다. 미국의 J.C. 페니(J. C. Penney Company)라는 대규모 백화점 체인은 "황금률 매장"으로 유명했으며 그 체인점은 성경 말씀을 토대로 고객 서비스와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여겼다. 물론 하나의 종교 혹은 철학이 크게 지배적인 다른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혹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구 사회가 세속적으로 변해가면서 종교적인 고려사항들이 기업 윤리의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태가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 어떠한 윤리적 지침 근거도 과거에 성경적 윤리가 차지했던 위치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 이상의 윤리적 지침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많은 경영 대학원들이 윤리에 대해 의논하고자 할 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면을 강조하고 그 어떠한 편견이나 종교적 개입과 무관함을 보여주기에 급급해 결국 도덕과 가치들을 크게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그 결과 합법적인 것에 무미건조한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 이사들의 논의는 이러한 태도가 부적절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사들 전부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법률을 넘어서는 명령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윤리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히 명시해줄 하나님의 명령을 구한다. 예를 들어, 일이나 고용 문제와 같은 경우에는 관련된 성경 말씀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경적 말씀을 찾거나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각 상황에 어떠한 규칙과 원칙이 적용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경을 적용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다른 체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웨인은 그의 딜레마에 합당한 그런 종류의 답을 어디서부터 찾기 시작해야 할까?

 

각 상황에 맞는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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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해진 웨인은 그의 책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 찾고 있던 종류의 책인 <비즈니스맨을 위한 주제 성경>[1]을 발견했다. 언뜻 보니 책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책은 특정한 성경 말씀을 찾아 우리가 직면하는 특정한 직장 문제를 다루는 규칙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웨인은 페이지를 넘겨가며 책을 훑어봤다. 저자인 마이크 머독(Mike Murdock)은 “오늘날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황과 환경에 하나님의 통찰력을 제시”하기 위해 성경에서 1550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었다. 이 말씀들은 “여러분의 태도,” “당신의 직장,” “당신의 일상 스케줄,” “당신의 가족,” “당신의 재정 상태,” “비즈니스맨과 정직,” “고객이 불만족이라면” 등의 주제들로 나뉘어져 있었다.[2] 거의 100개에 달하는 주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흔하게 벌어지는 비즈니스 상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었다.

 

   항목들을 살펴보던 웨인은 책의 저자가 의사 결정에 대하여 그 어떤 상세한 방법도 서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각 상황에 적절할 것 같은 성경 구절들을 설명이나 해설 없이 나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이 직접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부가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웨인은 처음에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제를 몇 개 찾았다 : 

  •  "고객이 불만족이라면"이라는 항목에는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와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눅 6:35)와 같은 말씀이 수록되어 있었다.
  • "비즈니스맨과 정직함"에는 시편 112:5 말씀이 인용되어 있었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  "비즈니스맨과 협상"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라는 말씀이 언급되어 있었다.[3]

 

   웨인은 책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고 이런 무작위로 발췌된 성경 구절들이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디모데후서 2:24 말씀은 디모데후서 1:7 말씀과는 정반대의 조언을 주는 듯 했고,어찌됐든 디모데후서 1:7 말씀은 환불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내용이었다. 누가복음 6:35 말씀은 대적 관계에 있는 이들에 대한 것이지, 고객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말씀들은 실제로 웨인의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러한 접근법의 문제 중 하나가 성경을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여러 상황들에 대한 "해답집"으로만 보는 경우, 말씀이 맥락에서 벗어나 원저자의 의도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이는 "제멋대로 갖다 붙이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문제"에서 시작해 "해답"을 구하려 든다면, 실제로 성경을 거꾸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초래하는 위험은 우리가 단순히 미리 구성된 계획에 맞는 것만 취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성경이 스스로 뜻을 전하고, 일관성 있는 주제와 메시지들이 성경을 읽는 행위와 읽는 본문을 통해 스스로 나타나도록 두지 않고서 말이다.

 

   예를 들어, 웨인이 "고객이 불만족이라면"을 자세히 읽어보니,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라는 누가복음 21:19 말씀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원래 그 말씀이 속한 구절을 읽었을 때, 그는 비즈니스에 있어서 불만족한 고객과는 전혀 관련 없는 구절임을 깨달았다. 그 누가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인용한 것으로 제자들이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체포되거나 박해받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시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씀은 맥락에서 따로 떨어져 수록되어 있었고, 웨인이 살펴본 항목들의 말씀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모든 상황마다 성경적 규칙을 찾아다니는 것에는 또 다른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한 행위는 일종의 환원주의 혹은 율법주의로 빠져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경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한 진정한 열망으로 인해 율법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너무 시시콜콜 나누었고, 결국 하나님을 따르기보다는 율법주의와 교만에 빠지고 말았다.

 

   만약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심한 비난으로 들린다면, 이들이 하고자 했던 일이 감탄할 만한 것이었음을 잠시 짚고 넘어가자. 이들은 사업 문제를 포함한 자신들의 평생의 삶에 믿음을 진지하게 적용시키고자 했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에 속한다. 이들은 성전 의식을 따르고 유대교 회당의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고자 했던 일은 삶의 모든 방면에서 경건한 것이 뜻하는 바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행하기 위해 모든 상황에 맞는 규칙을 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성경이 실제로 뜻하는 바를 훨씬 넘어서는 규칙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모든 상황을 통제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율법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을 살펴보자. 이 율법이 실생활에서 행해지는 모습을 명백히 정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그 행위의 본질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뻔뻔하다며 질책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 만든 규칙의 노예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다른 이들이 율법의 목적대로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직장의 맥락에서 직면하는,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윤리적 딜레마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 권의 완전한 규칙서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무의미한 일이다. 성경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천 가지의 상황을 전부 설명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시도를 하게 되면 실제 의도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혹은 더 심한 경우, 성경의 중요성을 축소시키고 핵심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성경이 일터에서 윤리에 대한 포괄적인 규칙서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지만, 성경에는 중요하고 유의미한 명령/규칙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복잡하지 않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구절들이 많다. 우리가 직장에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들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 많은 비즈니스 활동의 경우, 어렵지 않게 성경을 통해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성경이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상사와 비슷한 개념)에게 순종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한다면(예: 골 3:22),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성경이 우리에게 게으르게 행하지 말고 자기 양식을 위한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면(살후3:10-12),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갈등에 있어서 문제의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함으로써 해결하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하는 지침인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하거나 살인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그러한 명령들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Mike Murdock, The Businessman’s Topical Bible: Wisdom and Inspiration for Today’s Businessman (Tulsa: Honor, 1992). 비즈니스 여성용 버전도 있다.

본 섹션들 내의 각 "챕터"는 “When…(…할 때)” or “The Businessman and …(비즈니스맨과 …)”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When a customer does not pay his bills(고객이 계산을 지불하지 않을 때)" 혹은 "When you face illegal or unfair competition(당신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경쟁에 직면할 때)" 혹은 "The Businessman and Negotiation(비즈니스맨과 협상)" 등이 있다.

Murdock은 이 구절들을 NIV버전으로 사용했다.

더 큰 원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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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망한 웨인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놓았다. 그러던 중, <성경 속의 경영학>[32]이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 흥미를 느낀 웨인은 책을 꺼내보았고 곧 성경 속의 원칙들을 알아보는 것이 저자 래리 버켓의 접근법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원칙"이란 규칙보다 더 넓고 보편적인 개념의 수칙으로 옳은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해 성경적으로 도출된 명령들의 형태를 지닌 것이다.

 

   웨인은 그 책의 부제가 "비즈니스맨과 비즈니스우먼을 위한 성경원리에 입각한 완벽 지침서"인 것을 보고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성경 속의 경영학>은 "그분의 방식으로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윤리적 지침을 하나님께서 원칙으로 규정지어 놓으셨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버켓에 의하면, 성경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제공하는 법률과 율법, 그리고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1]

 

   이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십계명으로, 버켓은 이를 두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본다. 그리고 비즈니스 업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아닌 이들을 구분하는 또 다른 최소한의 기준들이 있다.[2]

 

이   와 관련해 버켓은 "성경적 비즈니스의 6가지 최소 기준"을 세우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경영 실무를 할 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라.
  •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라.
  • 적당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라.
  • 채권자들을 존중하라.
  • 직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
  • 고객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

 

이러한 규칙들은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래리 버켓이 성경 규칙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원칙들이다. 이러한 규칙들은 구체적인 규칙처럼 세부적이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서 발생하는 실제 상황들을 더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웨인을 도울 수 있을까?

 

   "적당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라"는 것과 "고객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는 두 개의 "최소 기준"은 웨인의 상황과 연관이 있다. 그건 확실하다. 이러한 원칙들을 알아보는 것이 유용하긴 하지만, 실제로 웨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웨인은 여전히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한" 처사라 할 수 있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공정한 것을 세우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웨인은 버켓의 두 원칙에 모두 바로 동의했지만 그 이상 일을 진행해 나가는 데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는 명령을 기반으로 한 방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일련의 명령들이 세부적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상황들을 전부 다루지 못한다. 반대로 명령들이 보편적이라면 다루는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책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친구들과 상의해보라는 제안이 나와 있었다. 웨인은 이것이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웨인은 그의 딜레마를 보는 시각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좀 더 공동체적인 환경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다. 이는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극심한 개인주의에 정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며,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복잡하기 때문에 통찰력 있는 타인들의 관점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웨인은 성경을 활용함에 있어 상당히 지시적으로 느껴지는 접근법에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이는 마치 성경을 일련의 이해하기 쉬운 원칙과 규칙으로 축소해 마치 "사용설명서"처럼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경영학>처럼 우리의 믿음이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비즈니스 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진지하게 시도하는 접근법들을 살펴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접근법은 버켓의 특정 관점에 따라 제한적으로 선택된 원칙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와 비슷하게 비즈니스에 대한 성경의 접근방법을 요약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이 접근법 또한 일부 문제들에 있어서는 유익한 통찰력을 제공해주지만 그 책이 전달할 수 있는 내용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약속한다. 

 

Larry Burkett, Business by the Book: The Complete Guide of Biblical Principles For Business Men and Women (Nashville: Nelson, 1990).

Burkett, 15쪽.

Burkett, 16쪽.

단 하나의 원칙 혹은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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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인은 여전히 그의 딜레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도움이 될 만한 다른 것이 없나 살펴보기 위해 다시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존 맥스웰의 <결정적 순간의 원칙(원제: There’s No Such Thing as “Business” Ethics)>이라는 책이 금방 그의 눈에 띄었다.

 

   존 맥스웰은 우리가 기독교적인 의사결정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경의 모든 도덕적 명령들이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포괄적 명령으로 축약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맥스웰에 따르면 기업 윤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단 하나의 규칙만 존재한다.[1] 이것이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설파하신 "황금률"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 하나의 지침("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접받고 싶은가?")에 따라 모든 윤리적 결정이 좌우돼야 한다는 것이다.[2] 맥스웰은 이 규칙을 두고 간단하지만 쉽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그 규칙이 포함하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많은 원칙들이 필요하단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 

  1.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대해주는 것보다 더 잘 대해주어라.
  2. 또 누군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마5:41 참고).
  3. 여러분을 도울 수 없는 이들을 도와주어라.
  4.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하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라.
  5.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손해라고 해도 약속을 지켜라.

 

   성경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맥스웰의 접근법은 분명 마태복음 7:12 말씀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3] 지난 200여 년 동안 이 말씀은 황금률로 전해져 왔으며,[4] 맥스웰은 이 계율의 핵심을 다른 종교와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도 권고되는 원칙인 것이다.

 

   맥스웰이 설명을 위해 언급한 여러 원칙들 또한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 가르쳐주신 다른 요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대해주는 것보다 더 잘 대해주어라" 같은 원칙의 경우, 마태복음 5:43-48 말씀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으며, "누군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는 원칙은 마태복음 5:41 말씀을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영 윤리와 관련해 이러한 황금률 접근법에 웨인이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예수님과 예수님의 윤리를 회피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고무적인 것이다.

 

 

웨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것은 어떻게 도움이 될까?

 

   황금률은 웨인에게 있어서 매우 유용하고 문제를 명확하게 해주는 원칙임에 틀림없다. 그로 인해 웨인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고객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대우받고 싶을까?" 그리고 이와 관련된 원칙들인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대해주는 것보다 더 잘 대해주어라"와 "누군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는 웨인이 자신의 법적인 책임 그 이상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맥스웰의 접근법은 웨인이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는 것에 있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금률이 예수님의 윤리적 가르침의 핵심에 가깝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원칙 하나의 중요성을 높이는 것의 단순함은 단연 매력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현혹적일 수 있다. 맥스웰이 더 많은 적절한 규칙들을 통해 살을 붙여야 하는 걸 보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윤리적 행동은 (적어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득이 된다는 맥스웰의 기본 가정들 중 일부는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한 가정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5] 실제로 스콧 레이(Scott Rae)와 켄맨 웡(Kenman Wong)은 만약 이러한 가정들이 항상 (혹은 대부분이라도)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찾아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전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건실하고 도덕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며, 경영 윤리에 대한 서적이나 강의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6]

 

   맥스웰의 접근법에는 또 다른 한계점이 있다. 그의 접근법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선택을 하는 사람과 그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 이렇게 단 두 사람만 연관된다고 본다. 이 두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만 한다면 황금률에 따라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웨인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서 그 접근법이 대체적으로 적용됨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자연환경에까지 미치게 될 결과를 고려했을 때 그가 내려야 하는 다른 많은 결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웨인은 4륜구동 차량을 판매했다. 웨인은 고객에게 황금률을 잘 적용했다고 느꼈다. 고객을 정중히 대했고 그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거래를 제공했으며,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웨인은 해당 차량의 높은 연료 소비량이 환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더욱 광범위한 문제를 판매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Maxwell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챕터 5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Maxwell, 21쪽.

누가복음에서 상응하는 부분은 6:31이다.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Craig Keener는 John Wesley가 1750년 했던 설교에서 이를 처음으로 이렇게 불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Craig S. Keener, Matthew,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VP, 1997) 161쪽을 보라.

Amar Bhide와 Howard H. Stevenson은 광범위한 연구 끝에 "진실을 말하거나 약속을 지키는데 강렬한 경제적 이유란 없다 - 실제 세상에서 배반자에 대한 처벌은 신속하지도 확실하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들력있게 주장한다. 그들의 글 “Why Be Honest If Honesty Doesn’t Pay?”, originally published in Harvard Business Review (Sept-Oct, 1990) 121-129쪽을 보라. 허가를 받고 Rae와 Wong에 의해 Beyond Integrity, 70-78쪽에 재판되었다. 

Scott Rae and Kenman Wong, Beyond Integrity: A Judeo-Christian Approach to Business Ethics (Grand Rapids: Zondervan, 1995) 85쪽.

세 가지 균형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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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인은 이제 참고할 서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책장을 올려다보면서 알렉산더 힐의 <공정한 비즈니스(Just Business)>를 발견한다.[1] 경영학 및 경제학 교수인 힐은 그 책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단일 규칙 접근법과 여러 규칙이 수반되는 좀 더 복잡한 다른 접근법들의 중도를 찾고자 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경영에 있어서 기독교적 윤리는 규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성품에 입각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공부하고 관찰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행동은 윤리적인 것이며 일치하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다."[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라고 부르심 받았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에 대해 힐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하나님의 성품 세 가지를 들고 있다 :

  • 신성함
  • 정의로움
  • 사랑

 

힐은 이러한 성품을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

 

신성함

 

신성함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두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는 물질적 재화, 직업적 목표, 개인적 관계 등과 같은 다른 문제들을 덜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함을 추구하는 것은 열정, 순결, 책임, 겸손을 포함한다.

 

정의로움

   "정의는 공동체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상호적인 권리와 의무를 세움으로써 인간관계에 질서를 제공한다."[3] 두 가지 본질적인 개인적 권리는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 받는 권리와 자유의지를 행할 권리이다. 의무 혹은 책임(실제로 정의와 함께 동전의 양면으로 여겨짐)은 이웃들이 이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대우해줄 것을 요구한다. 권리와 의무는 긴장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균형을 이루어준다. 예를 들어,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을 근로자의 권리는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공정한 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에게도 자신의 급여에 맞게 성실히 일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정의로움은 권리와 의무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

 

사랑

   힐은 사랑이 일반적으로 가장 으뜸인 덕목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4] 하지만 사랑은 나머지 두 특성에 의해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성함-정의로움-사랑의 조합에 있어 사랑이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공감, 자비, 자기희생을 통해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은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를 형성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관계가 깨지게 되면 고통이 생겨난다.

 

 

세발의자

 

   그렇다면 힐의 관점은 "하나님이 지니신 신성함-정의로움-사랑의 성품을 반영하는 비즈니스 행위는 윤리적인 것이다."[5]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성품이 나열된 순서는 중요성과 관련이 없다. 실제로 이 성품들은 서로 뒤얽혀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힐이 사용하는 이미지는 세발의자다. 우리가 만약 성경적인 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이 모든 세 가지 면들(혹은 다리들)이 일관되게 고려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심하게 불균형적인 의자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신성함이 사랑과 정의에 비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그 결과로 율법주의와 독선적인 판단주의, 그리고 사회로부터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정의로움이 우세하다면, 감정적인 냉담함과 비난과 같은 냉혹한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사랑이 유일한 대책으로 여겨진다면 방임과 편파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요구하는 것의 한계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줄 다른 윤리 기준들이 없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힐은 성경을 특정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규칙서로 압축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모두 비난하고 있다.[6] 또한 힐은 비즈니스 업계의 복잡함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웨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힐의 접근법은 세 가지 원칙(하나님의 성품이 시사하는 광범위한 명령들)에 의거해 세워졌다 하지만 그는 특히 정의로움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기 위해 결과를 고려하기도 한다.

 

 

이 접근법은 웨인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웨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신성함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이와 균형을 이루는 정의와 사랑과 같은 원칙들은 꽤 유용함을 깨달았다. 웨인의 판매자-고객 관계에 존재하는 특정한 권리와 의무는 무엇일까? 그리고 고객의 요구에 어떻게 응하는 것이 판매자와 고객 둘 다에게 공정한 것일까? 웨인은 자신에게 수리비를 보태야 하는 의무가 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고객에게도 수리비를 보탤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정의가 고객과 판매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된 것이다.

 

   웨인은 자신이 애초에 고객에게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자신이 수리비 전부를 부담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랑의 원칙에 따라 그는 "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 역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진 않았지만 웨인은 이를 통해 고객의 금전적 상황을 고려해보게 되었다. 높은 가격의 수리비가 이 특정 고객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몇 가지 일반적인 평가

 

   힐의 접근법이 갖는 강점 중 하나는 좀 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살펴볼 때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신성함-정의로움-사랑이라는 세발의자는 황금률 단 하나의 원칙보다 더 균형 잡혀 있으면서도 앞서 살펴보았던 다수의 규칙을 세우는 접근법보다 훨씬 덜 번거롭다.

 

   세발의자의 주된 한계는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에게 무엇이 신성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우리가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정의가 사랑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더 높은 우선순위를 지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은 조금씩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리는 일이 쉽지 않을 거란 사실은 항상 명백했었으나, 힐의 세발의자가 웨인에게 시도해볼 수 있는 생각을 제공해준 셈이다. 윤리에 대한 접근법 중 그 어느 것을 채택하더라도, 관련된 규칙과 원칙을 찾고 균형을 맞추는 부분은 확실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어떠한 결정이 가장 사랑스럽고 정의롭고 신성한 결과를 낳는지 알아보기 위해 각기 다른 행동 과정들에 의해 초래된 결과들을 추정해보아야 한다.

 

 

Alexander Hill, Just Business: Christian Ethics for the Marketplace (Downers Grove: IVP, 1997).

Hill, 13-14쪽.

Hill, 34쪽.

비록 Hill이 두 가지 큰 계명 -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마22:37-39) - 이 거룩함(하나님을 우리의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과 정의(다른 이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를 포함한다고 언급했지만. 47쪽을 보라.

Hill, 15쪽.

Hill,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