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세상에서 윤리적 결정 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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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규칙을 따르고, 하나님이 구하시는 결과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성품을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가 없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용기가 부족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신성하지 못한 욕망이나 태도, 두려움, 관계 등의 요소로 인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생명 윤리와 같은 경우,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만약 다른 대안이 매춘부가 되는 것이거나 자녀들을 굶기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직장에서 능력 있지만 비열한 동료들과 일한다든지, 혹은 능력은 없지만 친절한 동료들과 일한다면 예수님의 성품이 어떠한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이나 삶의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간단히 완벽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것과 최선의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기독교적인 윤리 접근법은 우리가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원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적어도 더 나은 결과를 얻도록 해준다. 부패한 제도 속에서는 진정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되어가길 원하시는지를 잘 묘사해준다. 비록 우리가 짧은 시일 내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이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희망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제도 가운데 예수님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최악의 상황들을 겪어야 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거두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결국 모든 것은 은혜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옳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용서 받으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인격 접근법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규칙에 따르지 못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결과를 갈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어제 했던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오늘 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제였더라면 거짓말했을 것을 오늘은 그저 단 한번이라도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조금씩 바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아주 조금씩 윤리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