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를 십계명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성경을 하나의 규정집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은, 실제로 성경 말씀이 얼마나 자주 독자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살펴보고 그러한 결과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라고 권하는지 알게 되면 적잖이 놀랄 것이다.
예를 들어, 잠언은 특정 행위가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함축적인 격언들, 즉 이러한 경고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예로, 잠언 14:14은,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도 청중을 향하여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른 결과를 신중히 따져보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7:16).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의 일생과 사역은 공공의 선을 위한 결정의 살아있는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복의 가르침 또한 결과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배부르고" 싶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마5:6). 그리고 산상설교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5:25)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5)
결과를 고려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성경적 접근법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일에는 숨겨져 있는 지뢰들이 매우 많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좋은 결과가 항상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맥락에 따라 좋은 것이 달라지는가?"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