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 빈곤층

아티클 / TOW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주제별 콘텐츠

   이상적으로 보면, 시중금리 거래는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이는 모든 종류의 상업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종류의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내고 판매하는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하지만 재화와 용역은 필요하지만 구매자에게 이를 충당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금융뿐만 아니라 식량, 주거, 전력, 의료 서비스 등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이 필요한데 채권자가 요구하는 신용 조건에 맞출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는 높은 금리를 적용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그쯤 되면 이런 상황은 더 이상 상거래가 아닌 보조금, 양도, 혹은 기증이 요구되는 단계로 접어든다. 판매자가 재화나 용역을 판매할 때 우리는 보통 그들이 손해를 보거나 무상으로 그것을 제공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기부자나 원조 기관, 혹은 정부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기부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풍족함을 누리는 이들이 관대하기를 바라는 기대, 혹은 적어도 그들이 그러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금융도 다른 분야와 이런 면에서 비슷하다. 성경은 금융 분야에서의 관대함을 촉구한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레25:35-36)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신15:7-8)

 

   성경은 재화에 있어서도 관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눅3:11)

 

   관용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형제” 레25:35)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는 가격이 매겨진 시장이 아닐 것이다. 곡식 시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곡식 시장을 위한 토대를 만드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모든 이들이 곡식을 기를 수 있는 똑같은 능력을 받지 않았으며, 곡식은 모든 곳에서 똑같이 잘 자라지 않고, 곡식은 1년 365일 동안 매일 추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곡식은 영양가가 풍부하며 우리의 몸은 추수를 하는 시점에 이를 전부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추수 때까지 곡식은 남겨진다. 성경은 곡식을 사고파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곡식을 비축해놓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과부, 그리고 고아에게 나눠주라고 권고하고 있다(레19, 눅12:16-21). 앞서 살펴본 대로, 성경은 금융 자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전한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통해 의도된 대로 대부분의 금전적 자원을 시장에서 가격(금리)을 매겨 배분하는 것과, 가족 혹은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으로(제로 금리) 금전적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둘 다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이웃 사랑의 실천이 될 수 있다. 돈을 벌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자금에 대한 별다른 접근 방법이 없는 가족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것 또한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이 돈을 다루고 재화나 용역을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채권자가 다른 사업이나 제도보다 더 많은 자선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은 없다. 오히려 수익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로 가져와야 하는 기업 자신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금융의 토대에는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에게도 주어지는 이득도 포함된다. 어떤 금융 기관이 돈을 무상으로 기부할 때마다,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의 일부는 박탈을 당한다. 연금기금 투자자들이 오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1] 채무자들에 대한 자선은 대개의 경우 연금 수혜자들의 퇴직 소득을 희생하면서 이뤄진다. 따라서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자선활동은 금융의 역할이 아니다.

 

“Asset-backed Insecurity,” The Economist, January 19, 2008, accessed online at http://www.economist.com/node/10533428 on January 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