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역 - 더 높은 수준의 부르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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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전도사, 선교사, 목사, 성직자, 목회자 같은 교회 사역자들이 다른 교회 봉사자들보다 더 높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중세시대까지 수도승이나 수녀들의 "종교적" 삶은 다른 일반적인 삶보다 더 신성하다고 널리 여겨졌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의 교리에서 그러한 종류의 일과 평신도의 일이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왜곡은 안타깝게도 교회의 모든 전통에 남아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개인들을 교회와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관련 없는 일로도 부르신다. 예를 들면 : 

 

교회 사역을 향한 부르심

출 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막 1:16-17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행 13:2, 5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교회 사역 이외의 일에 대한 부르심

신 31: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모세와 여호수아는 원래 신앙적/종교적 지도자가 아닌 군사적/정치적 지도자였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특별히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종교적 지도자가 된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상 16:12-13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따라서 하나님께서 교회 사역자들만 부르시고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부르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이러한 혼란이 생겨나는 이유는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에게 사역자로 임명을 받거나 목사, 성직자, 목회자로 섬기기 위해서는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르심"이라는 단어는 전일제로 교회 사역을 맡는 결정, 또는 목회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직접적이고 확실한 부르심을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의미할 확률이 더 높다. 앞에서 다뤘듯이, 하나님의 이끄심은 교회와 관련 없는 일과 직업에서도 강하게 임하실 수 있다. '일의 신학' 프로젝트에서는 교회 사역을 주제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 사역에 대한 "부르심"이 교회와 관련 없는 일에 비해 더욱 강력하고, 직접적이며, 분명하거나 또는 필요한 것인지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 사역이 다른 일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높은 부르심은 아니라는 점과,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교회 사역에서 적용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교회 사역이 아닌 일들도 역시 교회 사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전업"이라는 점을 확언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전업으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끊임없이 행하라고 부르심(명령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을 받았다.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우리가 방금 살펴본 것과는 정반대로 딤전5:17-18을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 관점에 따르면, 교회 장로(오늘날 현대적인 교회 관점으로는 목사나 성직자와 거의 비슷한 위치)는 실제로 더 높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 된다.

딤전 5:17-1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목사가 되는 것은 다른 직업에 비해 "갑절이나 존경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 주석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1] 더 정확한 해석은 그저 적당히 일을 하는 다른 장로들에 비해 두 배나 존경(또는 사례금)을 받을 만큼 일을 잘 하는 장로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또는, 남는 시간에 봉사를 하는 장로들과 교회 일을 전업으로 삼는 장로들을 대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2] 구약성경에서 임금과 관련된 인용구를 살펴보면, 위의 구절이 일을 잘하거나 전업으로 일하는 장로에게 사례하라는 의미일 뿐, 교회 사역과 다른 일을 비교하는 구절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교회 사역을 전업으로 하는 장로들과 맡은 일을 탁월하게 잘 해내는 장로들은 교회에게서 보상을 잘 받을만하다는 의미다. 이 구절은 실제로 목사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끼리 비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그 가치가 동일하지 않은 일은 오직 성경에서 금지된 일이나 성경적 가치와 맞지 않는 일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또는 탐욕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출20:13-17), 고리대금업(레25:26), 건강을 해하는 일(마10:8), 또는 환경을 해치는 일(창2:15) 등은 하나님이 옳게 보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낮게 보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옳지 않은 일을 하게 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반드시 악인이라는 것도 아니다. 신22:21 말씀은 창기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지만, 창녀에 대한 그리스도의 반응은 비난이 아니라 구제였다(눅7:47-50; 마21:31-32). 어떤 상황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일이 그나마 다른 나쁜 일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종류의 일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위해 예비해두신 일일 가능성은 없다.

 

   목회나 교회 사역으로의 부르심이 다른 종류의 일로의 부르심보다 신성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책이나 일터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I. Howard Marshall, The Pastoral Epistle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 & T Clark, 1999), 610쪽 이후를 참조하라.

William D. Mounce, Pastoral Epistle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46,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00),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