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및 독신과 관계된 문제들을 주요하게 다루는 장 중반부에서 바울은 부르심과 일에 관한 중요한 진술을 한다. 다른 특별한 조건이 없는한, 신자들은 회심했을 당시의 삶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7:20). 바울이 다루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체적인 질문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구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만일 종(노예)의 신분인 신자가 자유를 얻을 기회를 갖게 된다면,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대 사회의 노예제도는,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 상황이나, 현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노예로 전락하는 실상이나, 사실상 지구촌 전역에 존재하는 성 매매 등 현대판 노예제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양자 모두 극악무도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고대의 일부 종들, 특히 바울이 이 본문에서 염두에 둔 집에서 부리는 종들은 여러 자유인들보다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더 나은 생활을 했다. 의사와 회계사를 포함하여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사실상 이러한 이유로 차라리 노예 신분을 선택했다. 따라서 바울에게 위의 질문은, 순수하게 종과 자유인 가운데 어느 신분이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반면, 현대적인 형태의 노예제도에서는 어느 경우에도 종이 된 사람들의 삶이 철저히 훼손당한다.
그러므로 바울의 질문은 노예제도 폐지 여부가 아니라, 노예들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서 고린도전서7장 21절에 사용한 헬라어가 모호하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의 정확한 본질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실제로 이 모호함으로 인해 두 개의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까지 하다. NRSV 성경과 다수의 주석가들이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당신이 노예일 때 부름을 받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긴다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십시오.” 그러나 NIV, NASB, KJV 성경의 다음 번역 역시 동일하게 가능한 해석이며, 우리는 이 해석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노예였습니까? 그로 인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NIV).
바울의 조언이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비교하면, 종이 되는 것과 자유인이 되는 것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 7:22).
그러므로 당신의 상태를 바꿀 별다른 강력한 이유가 없다면, 부르심 받은 당시의 환경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의 가르침은 직업이라는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적합한 직업을 갖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거나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삶을 경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느낀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 전반에 걸쳐 갖게 되는 모든 직업을 최대한 활용하는지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주어진 상황에서 직장 또는 심지어 직업 자체를 바꿀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직업이라면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성취하는 통로가 될 수 있으므로, 일생의 직업을 찾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만들지 말라. 더 경건하고 덜 경건한 직업 간에 계급이란 없다. 확실히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경건한 크리스천들은 교회 관련한 일로 부르신다는 잘못된 믿음에 경종을 울린다. 이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소명’의 “소명에 대한 개요” 부분을 보라.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