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선한 일을 행하라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기 위해 건축 중에 있는 건물 비유를 소개한다. 이 주제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 본문 전체를 인용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0-15).
성경 전체를 통틀어 세속적인 일의 영속적 가치를 가장 곧이곧대로 언급한 구절일 것이다. 지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라 일을 수행하는 한, 이 일은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행한 일을 성전에 비유하여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터를 닦는 “지혜로운 건축자”(a skilled master)에 비교하는데, 터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 터 위에 세우고, 각자는 자신의 일에 책임이 있다. 바울은 선한 일을 금, 은, 귀한 보석에, 부끄러운 일을 나무, 풀, 짚에 각각 비유한다. 혹자는 각각의 재료에 특정 의미를 부여해 보려 했지만, 차이는 단지 어떤 재료는 불의 시험을 견디지 못한 반면, 다른 재료는 잘 견뎌 냈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일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건축자)은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개인의 구원에 관해 어떤 판단을 내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은 신자의 ‘선한 일’과 하늘에서의 상급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가끔 그렇게 읽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신 바울은 교회 전체와 교회 리더들이 교회 내에서 어떻게 사역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만일 리더들이 교회 화합에 공헌한다면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리더들의 사역이 분쟁과 파벌주의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있는 성전을, 그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자들로부터 전심으로 지키려 하시기 때문이다(고전 16-17장).
바울이 크리스천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관해 썼지만, 그의 가르침은 모든 종류의 일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크리스천이 하는 일의 범주가 교회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권위하에서 하는 일도 포함하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의 일이 무엇이건,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평가하신다.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공평할 수 없는 우리의 상사와는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정의로 심판하시고, 또 우리의 의도, 한계, 동기, 긍휼과 그분의 자비를 모두 계산에 넣을 수 있으시기에 최후의 심판은 어떤 평가보다도 그 결과가 정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부르셨으며, 그러한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은사를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은사를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책임감 있게 사용하길 기대하시며, 또한 우리의 일을 점검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은혜에 힘입어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면 그 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고용주에게 인정받거나 더 많은 급여에 매달리기보다는 이러한 사실에 동기를 부여 받아 최대한 선행을 행해야 한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