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직전의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했던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고린도인들을 깨우쳐 준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심판 날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고후 5:10)이다. 이러한 표현이 생소할 수 있다. 구원은 전적인 은혜에 기인하지 우리 자신의 행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은혜의 교리(엡2:8-9)와 바울을 연관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마서 2장 6-10절을 상기한다면 또 그렇게까지 생소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을 머릿속에 그릴 때 단순한 캐리커처가 아닌 바울이 실제로 말한 것에 기초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의 가르침은 예수님, 야고보, 심지어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도 조화를 이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선행으로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참으로 믿음과 순종은 서로 긴밀히 엮여 있어서 바울 역시 실제로 이 둘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을 때조차 후자를 강조하며, 이는 본 구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내야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이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된 의로움의 일’로도 묘사할 수 있다.
어찌 됐든 바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사는지 눈여겨보신다. 이것을 직장 용어로 표현하면 우리가 어떻게 일을 수행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행한 것과 행하지않은 채 남겨 둔 모든 것을 주 예수님께 직고해야 한다. 이것을 일터에서 쓰는 용어로 표현하면 책임에 해당한다. 일을 수행하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 하나님께는 중요하지 않은 세속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는지, 직무를 소홀히 하는지, 무단결근을 하는지, 또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하는 시늉만 하는지 모두 지켜보신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우리한테 거는 기대에 하나님께서도 항상 동의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탁월한 일을 수행할 때 탁월함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잣대는 세상의 관리자나 감독자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특히 고용주의 기대를 만족시키느라 비윤리적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하나님은 고용주와는 다른 평가를 내리실 것이다. 만일 상사가 당신에게 고객을 현혹시키거나 동료들을 폄하하라고 지시한다면, 부디 상사에게서 나쁜 평가를, 하나님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도록 애쓰라.
하나님은 우리 행위를 높은 기준을 적용해 평가하신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 가족과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료, 상사, 피고용인, 고객을 대우한 방식 등 스스로 행한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은혜의 교리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신 의도를 보여 준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