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의 본론에서 자신이 고린도인들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말하지 않았던 고충을 털어놓는다. 바울은 고린도를 다시 방문하겠노라는 약속을 두 번이나 취소했다. 바울이 불성실했거나 또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 뒤에서 자기 뜻대로 하려고 남몰래 책략을 쓰는가?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12-14절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다룬다. 바울은 고린도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동이 항상 투명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바울의 행동은 그가 “육체의 지혜”(고후 1:12)라고 일컫는 모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체면을 살리는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린도인들에게 창피를 주거나 그들을 꾸짖고 싶지 않았다. 고린도를 재방문한다면 비난과 책망보다는 기쁨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에 되돌아가는 계획을 연기했다(고후 1:23-24).
당연히 바울의 진실은 의심을 받았지만 바울은 그동안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투명성을 지켜왔기 때문에 그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신뢰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신들이 세상에서 특별히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함’(고후 1:12)을 교인들에게 상기시킨다. 지금까지 바울의 행동을 보아 온 터라 이들은 바울이 자기 속내를 망설임 없이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후 1:17-20).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기에, 바울이 고려해야 했던 모든 요소들을 고린도 교인들이 알게 된다면 결국에는 그들도 ‘완전히 알게 될 것’(고후 1:1-13)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고후 1:14, 새번역)라고 바울이 말하는 데서 교인들이 바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직장 동료들이 우리를 신뢰할 만큼 충분히 투명한가? 어떤 사람이든, 회사든, 조직이든 하루도 빠짐없이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한다. 우리는 고객 또는 경쟁자로부터 부정하게 신뢰를 얻기 위해 우리의 동기를 모호하게 하는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는 요소들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비밀리에 결정을 내리는가? 면전에서 동료를 지지하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조롱하지는 않는가? 바울의 모범은 이러한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욱이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통해 단기적인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동료들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다. 그리고 만일 동료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인들 우리를 신뢰하실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를 항상 밝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설해서는 안 되는 개인이나 조직의 비밀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에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가 정직한 대답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해, 다른 사람에 대한 비교우위를 얻기 위해, 또는 우리 자신을 거짓되이 긍정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기밀 유지를 구실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동기가 의심을 받는 경우,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 온 정직성과 신뢰가 그 의심을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
투명성은 고린도 사람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에서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편지 전반에 걸쳐 이 주제를 언급한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 4:2).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고후 6:11).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