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이어 나오는 논의는 약간 순서를 벗어나는데(사도행전 19장 17-20절을 잠시 건너뜀) 그 결과 우리는 그 두 번째 갈등 사건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 사건은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의 본산인 에베소에서 일어난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 숭배는 소아시아에서는 막강한 경제적 힘이었다. 사냥과 농사 또는 가족 안에서의 다산에 대한 희망을 안고 순례객들이 그 신전으로(매우 웅장한 구조물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로 간주됐다) 몰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관광 중심지들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 대부분의 상권은 그 관광 명소의 영향력에 지속적으로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19]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행 19:24-29).
데메드리오가 인식했듯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될 때 그들의 돈 쓰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질 것이 요구된다. 우상숭배 관련 물품들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는 변화다. 자신을 위한 사치품 구입에 돈을 덜 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생필품 구입에 돈을 더 쓸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그들은 전체적으로 덜 쓰고 더 기부하거나, 더 투자하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크리스천이라고 은제품을 구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 소비 패턴이 바뀌는 것을 목도한 데메드리오의 관찰은 옳다. 이것은 이전의 방식에서 가장 많이 이득을 취하던 사람들에게는 항상 위협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상황에서 경제생활의 어느 측면이 크리스천의 복음과 어울리지 않는지 자문하게 한다. 예를 들면,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계속해서 구매하는가? 크리스천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데미 여신의 은신상에 해당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사고 있는가? 그 물품의 ‘브랜드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지위나 부, 권력, 지성, 아름다움이나 다른 속성들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호소하는, ‘꼭 갖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는’ 몇몇 브랜드 품목들이 생각이 날 수도 있다. 만약 크리스천이 자신들의 지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만 온다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브랜드와 자신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그건 일종의 우상숭배가 아닐까? 근본적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데미 여신의 은신상을 구매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에베소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때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경제적 결과들을 맞이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해 준다.
Witherington III, Acts of the Apostle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592-593쪽을 보라.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