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신학의 토대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그 세상을 보존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히 1:2).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자신의 일터에서 창조라는 일을 하신 창조주 그리스도에 대한 책이다. 성부 한 분만을 창조주로 생각해 오던 일부 사람들에게 이것은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창조에서 성부의 대리인으로 명명하는 신약의 나머지 부분들과 맥을 같이한다(요 1:3; 골 1:15-17).[1]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시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을 번갈아 가며 창조주라고 언급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창조라는 일을 하시는 그리스도를 어떤 모습으로 그리는가? 그분은 건축가로서 땅의 기초를 놓고, 하늘들을 건설하신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 1:10). 게다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심으로써’(히1:3) 현재도 그 피조 세계를 유지해 가신다. 그 “만물”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도 포함된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하나님은 모든 창조 역사를 그분의 아들을 통해 하셨다. 이 사실은 창조가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의 가장 중요한 장이라는 걸 확증해 준다.
일하시는 이미지의 하나님은 히브리서 전체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분은 하늘의 장막을 펴고 치시며(히 8:2; 여기서의 암시가 9장 24절에 나타난다), 모세가 지은 성막의 모형 또는 청사진을 건축하셨고(히 8:5), 한 성을 설계하고 세우셨다(히 11:10, 16; 12:22; 13:14). 그분은 법정의 재판관이요 집행관이시다(히 4:12-13; 9:28; 10:27-31; 12:23). 또한 군대 사령관이시며(히 1:13), 부모요 (히 1:5; 5:8; 8:9; 12:4-11), 자기 집안을 정돈하는 주인이시며(히 10:5), 농부요(히6:7-8), 기록자이시며(히 8:10), 상 주시는 분이시며(히 10:35; 11:6), 의사이시다 (히 12:13).[2]
시편 102편을 인용한 히브리서 1장 10-12절은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대조를 보여 준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이 세상에서의 삶이 갖는 일시성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영원히 있을 하나님의 도성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장 10-12절 말씀은 우주의 덧없음보다는 주님의 능력과 그분의 구원을 강조한다.[3] 하나님은 창조 세계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산물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부 창조자들(또는 공동 창조자들)이다. 그분의 아들처럼 우리도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라는 일로 부름을 받았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히 2:6-8; 이 내용은 시편 8편을 인용한 것이다).[4]
사람을 창조 사역의 참여자로 간주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히 2:11)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우리가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닮아야 한다. 거기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우리가 컴퓨터, 비행기, 셔츠를 만들고, 신발을 팔고, 대출계약을 하고, 농산물을 수확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도시나 지방이나 국가를 다스리거나 또는 온갖 종류의 창의적인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 안에서 하시는 일과 나란히 일을 하는 셈이다.
요점은 창조의 최고 책임자는 예수님이시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일할 때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로써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 창조된 우리 사람의 운명은 예수님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모범(히 2:10; 12:1-3), 공급하심(히 2:10-18), 끝, 그리고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바로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는 (무의미함을 포함해) 죽음과 좌절로 얼룩진 시간의 한복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히 2:14-15). 히브리서는 ‘아직은 우리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히 2:8)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금은 악의 세력이 강력하다.
이 모든 것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하늘과 “오는 세상”(히 2:5)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실들이다. 히브리서는 두 개의 다른 세상, 곧 물질로 된 악한 세상과 영으로 된 좋은 세상을 대조시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악에게 굴복했으므로, 다시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회복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창조된 모든 것을 구속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히 2:8, 새번역).
Sean M. McDonough, Christ as Creator: Origins of a New Testament Doctrin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을 보라.
하나님의 일에 대한 논의는 Robert Banks, God the Worker: Journeys into the Mind, Heart and Imagination of God (Sutherland, NSW: Albatross Books, 1992), 그리고 R. Paul Stevens, The Other Six Days (Grand Rapids: Eerdmans, 2000), 118–123쪽을 보라.
더불어 시편 102편을 인용함으로써 우주를 성자를 통해 창조하신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지금도 정결케 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그리는 이 단락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주님은 그분의 창조 세계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히브리서의 다양한 구약 인용은 항상 히브리어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 하고 있다. 그래서 칠십인역보다는 히브리어의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에 근거하는 오늘날의 번역과 항상 상응하지는 않는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