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성경을 탁월하게 해석하시는 것을 지켜본 한 서기관이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던 문제를 여쭈었다.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당시 청중이 이미 잘 알고 있을 두 계명으로 대답하신다. 첫째는 유대 민족에게 주신 선언으로 신명기 6장 5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어서 예수님은 “둘째는 이것이니” 라고 바로 덧붙이신다.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신다.(이 두 계명의 관계를 더 살피고 싶다면 이 책 1장 “마 22:34-40”과 3장 “눅 10:25-37” 부분을 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이 시리즈 1권 《일하는 크리스천을 위한 모세오경 · 역사서》 4장의 “레 19:17-18” 부분을 보라.)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은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알려 준다. 하나님이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집중하기 원하시는 과업을 둘만 꼽으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네 자신과 같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바라심도 드러내셨다.
감사하게도, 일은 우리가 지상대계명에 응답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가 많다. 그리스도인의 많은 직업은 다른 사람의 기본 필요를 채워 줄 기회가 된다. 의료서비스를 예로 들어 보자. 처방전을 써 주는 의사, 처방전대로 약을 조제하는 약사, 약국과 편의점에 약품을 비치하는 사람 모두가 이웃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일에 각기 역할을 담당한다. 의약품 공급망의 위아래를 훑어보면 약이나 치료법의 효과를 시험하는 과학자, 의료품이 운송되는 도로를 유지하는 건설노동자, 건강보험 청구 내용을 처리하는 사무직원, 이 모두가 이웃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 필요를 채워 줌으로써 이웃 사랑에 참여한다.
물론 인간이 필요한 것은 의료서비스외에도 많다. 음식, 거처, 웃음도 있어야 한다. 자신보다 큰 의미와 이어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농부와 식당 종업원, 주택건설업자, 보험설계사, 희극 배우와 아이들, 철학자와 목회자 모두가 자기 일을 매일 잘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교차로를 쌩쌩 달리는 차량의 브레이크를 최근에 손본 정비공의 사랑의 수고는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의 목숨을 좌우한다.
일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재정적 필요를 채운다. 이것도 일로써 지상대계명을 성취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로렌스 수사 같은 지혜로운 이들의 삶으로 널리 알려진 방식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함으로써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큰 구원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시장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길 원하시는지 보여 준다. 많은 산업과 일터에는 구원받고 회복되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크리스천 일꾼은 용서와 긍휼과 정직의 본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건, 우리는 지상대계명을 이루는 두 부분의 순서를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고, 이웃 사랑은 두 번째다. 도로시 세이어즈가 말한 대로, “두 번째 계명은 첫 번째 계명에 의존한다. 첫 번째 계명이 없는 두 번째 계명은 망상이고 덫이다. …… 이웃을 첫째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선시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우리가 인류를 숭배하고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삼기 시작한 이래 죽 해오던 일이다. ……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하는 일에는 역설이 있다. 공동체를 섬기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으면 일이 그릇되고 만다. 공동체를 섬길 유일한 길은 공동체는 잊고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25]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것은 우리는 진정한 일,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감당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 일은 우리의 이웃인 고객, 손님, 동료, 공급자가 우리에게 원하는 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는 우리가 그들의 일을 대신해 줌으로써 그들을 섬기길 바라는 반면, 하나님은 그들이 그 일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그들을 섬기기를 원하실 수도 있다. 고객은 최저가에 제품을 공급받기 원하는 반면, 하나님은 좀 더 높은 가격의 물건이 고객은 물론이고 환경과 사회에도 더 나은 이유를 고객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실 수도 있다. 지상대계명의 전반부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굳건한 토대에 우리 발을 딛게 한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써 다른 이를 위해 일해야 한다.
서기관은 자신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하신 것을 듣고 예수님의 우선순위가 옳다고 동의한다. 서기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유대교 율법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계명들보다 참으로 더 중요하다고 공감한다. 예수님은 그 서기관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응답하신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지상대계명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자기 몸을 돌보듯 다른 이를 돌볼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 일터에 임한다.
Dorothy L. Sayers, Letters to a Diminished Church: Passionate Arguments for the Relevance of Christian Doctrine (Nashville: Thomas Nelson, 2004),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