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내 이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위험 (막11:15-18)

아티클 / 성경 주석

  예수님이 성전에서 좌판을 뒤집어엎고, 환전상들을 쫓아내신 사건은 상업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 이 행동에 담긴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개별 복음서의 설명으로 보건, 역사적 예수라는 전통으로 보건, 논란이 있다.[21] 분명히 예수님은 제사에 쓰일 정결한 짐승과 새들을 팔고 있었든지, 아니면 성전세를 내기 위해 적정한 비율로 동전을 바꾸고 있었든지 간에, 성전 뜰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과격하게 쫓아내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거의 강도나 다름없는 환율로 사람들을 착취하던, 성전세를 내러 온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던 사람들에게 항거한 것이었다고 풀이한다.[22] 한편에서는 그것이 매년 내는 반 세겔 성전세를 거부한 것이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23] 또 다가오는 성전의 파괴에 대한 그림자로서, 성전에서의 절차를 종료시키는 예언적인 표적의 행위라는 견해도 있다.[24]
 

   우리가 그 성전을 오늘날의 환경하에 놓인 교회라고 가정해 본다면, 교회와 아무 연관 없는 일에 대해서도 다루는 이 책의 범주를 대부분 벗어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그 사건이 교회를 자기의 이익을 얻는 안전한 일터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미한 빛을 던져 준다는 걸 주목해 볼 수 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업상의 직책을 얻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거나 교회에 나오는 것은, 공동체에 상업적으로 손해를 끼치고 개개인에게도 영적으로 해롭다.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교회 안에서 더 나은 직장인(일하는 사람)이 되도록 서로 돕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만약 교회가 상업적 도구가 된다면, 교회의 정직함은 손상되고 교회가 하는 증언이 흐려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N. T.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London: SPCK, 1996), 413-428쪽. 그리고 좀 더 최근에는 J. Klawans, Purity, Sacrifice and the Temple: Symbolism and Supersessionism in the Study of Ancient Juda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213-245쪽.

Craig A. Evans, “Jesus’ Action in the Temple,” C. A. Evans, B. Chilton, eds., Jesus in
Context: Temple, Purity and Restoration (Leiden: Brill, 1997), 395-440쪽, 특히 419-428쪽에서 에반스는 당시 제사장들이 광범위하게 탐욕스럽고 부패한 상태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종류의 증거를 조사해 제시한다. 에반스의 주장은 E. P. Sanders, Jesus and Judaism (Philadelphia: Fortress, 1985), 61-76쪽 내용을 반박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에반스의 주장이 Klawans, Purity, Sacrifice and the Temple, 225-229쪽에서 도전을 받는다.

R. J. Bauckham, “Jesus’ Demonstration the Temple,” B. Lindars, ed., Law and Religion: Essays on the Place of the Law in Israel and Early Christianity (Cambridge: James Clarke, 1988), 72-89쪽, 특히 73-74쪽.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413-428쪽; Sander, Jesus and Judaism, 6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