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하나님의 은혜를 선언하다 (마5:1-12)

아티클 / 성경 주석

   산상수훈은 팔복, “복이 있나니”라는 말로 시작하는 여덟 번의 진술로 문을 연다.[4] 이 단어는 이미 존재하던 복된 상태를 확증해 준다. 각 복은 일반적으로 고생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자들이 실제로는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선포한다. 복 있는 자는 이런 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그냥 그들이 지금까지 복을 받아 온 사람이라고 선언하신다. 따라서 팔복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로드맵도 아니다.
 

   복 받은 각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 번째 복을 생각해 보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 5: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애통하는 것을 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슬픔이다. 그러나 천국이 오면서 애통은 복이 된다. 애통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님이 친히 위로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애통하게 하는 그 역경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해 주는 복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복이다!
 

   팔복의 기본 목적이 하나님 나라가 주는 복을 선언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나라의 특징을 보여 주는 하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5] 하나님 나라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우리는 복으로 명시된 것을 더욱 닮고 싶어진다. 즉 더 온유하고, 더 긍휼을 베풀고, 더 의에 주리고, 더 화평케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팔복에 도덕적 명령을 덧붙인다. 나중에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라고 말씀하셨을 때, 팔복은 이 제자들이 갖춰야 할 성품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성품을 묘사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루기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지 않으셔서 참 다행이지 않은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이 말씀만 놓고 볼 때 과연 누가 ‘마음이 청결하다고’(마 5:8) 말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복을 받을 수가 없다. 팔복은 조사한 결과 실패로 판명된 사람 모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천국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함께하기로 동의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복인 것이다.
 

   팔복의 또 다른 은혜는, 팔복이 하나님께 속한 개개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도 축복한다는 점이다.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아직 하나님 같은 성품을 다 갖추지 못했는데도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 팔복이 말하는 특징의 일부나 전부를 이룰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에 있는 전체 공동체의 모습에 의해 복을 받는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성격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마 24:30) 때 완전히 이루어진다.
 이런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팔복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성격을 탐색하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 일에 적용해야 할 것인지 준비를 갖춘 셈이 된다. 모든 복을 하나씩 철저하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그 복을 받고, 그 팔복대로 살아가는 기초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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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나니”(blessed)라는 단어는 헬라어 ‘makarios[마카리오스]’를 번역한 것이다. 그것은 복을 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이미 복이 주어진 상태를 확정하는 것이다. 영어로 “blessed”로 번역된 또 다른 헬라어는 ‘eulogia[율로기아]’라는 단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든지 한 개인이나 어느 공동체에 무언가 좋은 것을 가져다주시기를 비는 데 사용된 단어다. 그 단어는 팔복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Donald A. Hagner, Matthew 1-13, Word Biblical Commentary (Dallas: Word, 2002), 97쪽. 이 견해는 (비록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견해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대안적 견해에 대해서는 W. F. Albright, C. S. Mann, Matthew,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1971), 50-53쪽을 참조하라.

예수님께서 잠재적으로 제자가 될 사람에게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마 8:18-22)라고 하신 지시에서 우리는 급진적인 삶의 변화에 대한 동일한 요구를 본다. R. T. 프란스(R. T France)가 The Gospel of Matthew, New Internatinal Commentary on the New Ta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7), 331쪽에서 말한 것처럼 “천국은 분명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리듬을 기꺼이 중단하려는 어느 정도의 광신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