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신의 실패로 ‘애통’(팔복의 두 번째 복)해하고, ‘올바른 관계’(팔복의 네 번째 복)로 복 있는 자가 되었다면, 당신은 직장에서든 어디에서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긍휼은 누군가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보다 더 나은 대접을 해 주는 것이다. 용서도 긍휼히 여기는 것의 한 유형이다. 도와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누군가를 돕거나, 누군가의 연약함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이런 모든 의미에서 긍휼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의 원동력이었다. 그분을 통해 우리 죄를 용서받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로 도움을 받는다(고전 12장). 성령이 우리에게 이런 긍휼을 보여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요 3:16).
일에서 긍휼은 대단히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 다른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들이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심지어 과거에 당신한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그를 도와주면 당신은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오디션을 보는데 당신이 첫 경연자인 경우, 당신 차례를 마치고 나서 다음 순서 경연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과 진심 어린 격려의 말을 건넨다면 당신은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경쟁 상대의 자녀가 아플 때 당신이 고객에게 할 발표를 대신해 줌으로써, 그 경쟁자가 자녀를 돌볼 수 있게 해 준다면 이 또한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긍휼을 베풀면,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혹시라도 얻었을지 모를 어떤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될 뿐 아니라 일의 결과에도 유익을 가져온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설령 그것이 당신에게는 개인적 유익이 안되더라도, 당신이 속한 부서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다. 아니면 경쟁자의 자녀가 아픈 경우처럼 비록 그것이 당신의 조직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르나 당신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인 고객에게는 유익이 된다. 긍휼이 갖는 보이지 않는 실체는, 긍휼이 당신 이외의 누군가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 내에 용서하는 환경이 갖춰지면 그것은 또 다른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조직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킨다. 누군가 실수를 했는데 그 조직에서 전혀 긍휼이 베풀어지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아무에게도 실수가 알려지지 않고 자기가 비난받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 실수에 대해 덮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업무수행력을 떨어뜨린다. 첫째, 그렇게 덮어둔 잘못은 나중엔 처리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건축 현장에서 기초 토목 공사를 담당한 사람이 실수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 자리에서 바로 밝히고 드러내서 바로잡는다면 고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나 구조물이 세워지고 기초가 다 덮인 후에야 그것을 바로잡는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이다. 둘째, 가장 큰 학습 경험은 실패를 거치면서 얻게 된다는 점이다. 혼다 소이치로(Honda Soichiro)가 말한 것처럼 “성공은 오직 반복된 실패와 자기 관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성공은 실패라고 불리는 99퍼센트에서만 나오는 당신 행위의 1퍼센트에 해당한다.”[13] 만약 실패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조직은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없다.
Tom Peters, Thriving on Chaos (New York: Knopf, 1987), 259-266쪽. 톰 피터스, 《톰 피터스의 경영혁명》(한국경제신문사 역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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