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나 새 생명으로 행하는 것은 확고한 도덕적 구조(“성령의 법” - 롬 8:2)에 토대를 두고 사는 것이다. 바울은 이 도덕적 구조를 “영을 따르는 자” 또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롬 8:5)이라 부른다. 이 두 용어는 모두 우리가 새 생명 안에서 행할 때 우리를 인도해 가는 도덕적 추론 과정을 가리킨다.
이런 종류의 도덕적 긍휼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귀로 들어서는 통하지가 않는다. 대신 신자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킨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 8:1-2)을 실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생명”과 “사망”이라는 단어가 열쇠다. 성령에 따라 산다는 것은, 사망 대신 생명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성령에 마음을 둔다는 것은, 각각의 상황에서 더욱 많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추구한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의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라고(출 20:13) 가르쳤다. 그러나 성령에 따라 산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이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얘기다. 그것은 예를 들면 호텔 객실을 깨끗하게 청소해 손님이 건강하게 머물도록 해 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혹은 이웃집 대문앞 눈을 치워 지나는 행인들이 안전하게 오가도록 해 주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박사 학위를 따려고 여러해에 걸쳐 공부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자.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질의 삶을 산다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당연히 받아야 할 판단을 유보하고, 대신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기 위해 애쓰는 태도에서 나온다. 업무를 줄 때 상사는 부하 직원들이 이미 감당할 수 있는 것에 국한시키지 말고, 매일 자신에게 와서 지침을 받으라고 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는 과제를 맡길 수 있다. 일하다가 연장을 망가뜨려 대체할 연장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노련한 선임이라면 신입 일꾼에게 연장을 빌려 주는 대신 다음에는 연장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우리 강아지가 왜 죽었어요?”라고 물었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그 애완동물이 죽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게 두렵니?”라고 물을 수 있다. 이런 하나하나의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적인 목적은 단순히 율법의 요구만 채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질의 삶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단계를 넘어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보여야 할 도덕적 긍휼이다. 우리에게는 율법에의 종노릇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 자유가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롬 8:1).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데 바울이 “평화”를 포함시킨 것은 (로마서 13장6절 앞 구절들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사회적 측면을 짚어 준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가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5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새로운 질의 삶을 가져오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일터에서나 다른 곳에서 삶을 위축시키는 사회적 상황에 관심을 갖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살도록 해 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동시에 우리는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 시스템에 의와 의로움을 가져다주기 위해 애를 쓴다.
만약 우리가 속한 조직이 새로운 질의 삶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면, 크리스천들은 진보를 위한 (심지어는 생존을 위한)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원하는 만큼 우리의 조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으며 다른 데서는 못 듣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조직이 관례를 파괴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데 우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비밀스런 믿음을 품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만약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료들, 경쟁자들, 고객들,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교만해지고 파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음에 성령님을 모셨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 아닌지를 항상 물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 또는 열매를 계속해서 평가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진단에 정직한 태도를 취한다면, 이 또한 매일매일 회개와 변화를 위한 은혜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다.
Robert Jewett, Romans: A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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