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째 계명은 자신의 평판에 대한 권리의 중요성을 다룬다.[1] 이것은 사람의 증언에 따라 인생행로가 갈리는 법정에서 뚜렷하게 적용될 수 있는 계명이다. 사법적 판정과 소송 과정 속에 담겨진 힘은 실로 대단하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사회의 윤리 체계를 어그러뜨리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매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된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 계명이 “사회적 실상이 신빙성 있게 묘사되며 알려진다고 대중이 확신하지 못한다면 공동체적 삶은 실현 불가능하다”[2]라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법정 용어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이 아홉째 계명은 사실상 삶의 모든 국면에 해당하는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오해를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진실과 거짓’의 “과대광고/과장” 부분을 보라. 불러일으키거나 잘못 대변하는 말이나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브루그만은 다음과 같은 통찰도 제시했다.
정치인은 네거티브(부정적) 선거 운동으로 경쟁자를 음해하려고 애쓴다. 가십 기고가는 중상모략으로 돈을 번다. 그리고 크리스천은 거실에서 멋진 커피잔에 곁들인 다과를 먹으면서 남을 비방하고 평판을 파괴한다. 사실상 법정 행위가 정당한 사법 절차 없이 이렇게 도처에서 자행된다. 비난이 가해지고 소문이 전파되며 비방, 위증 및 명예훼손 발언이 여과 없이 유포된다. 여기에는 증거도 없고 변론도 없다. 크리스천은 이런 대화에 가담하거나 그런 대화를 용인하는 것을 거부해야 하며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당사자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절대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기도 요청이나 목회적 관심에 의한 것이라 해도, 동기가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단순히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크리스천에게는 소문을 멈추게 하고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을 막아야 할 의무도 있다.[3]
이 계명은 직장에서 하는 잡담도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직장 밖의 개인 영역에서 파괴력을 발휘하는 잡담도 그 자체로 악하지만, 한 직원이 다른 직원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경우에는 어떤가? 당사자가 현장에 없는 상황에서 진실이 규명될 수 있을까? 근무 태도를 평가하는 말은 또 어떤가?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려면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가? 마케팅이나 광고 산업은 대체로 단체와 개인이 섞인 공공영역에서 전개된다. 이때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돋보이게 하려고 할 경우, 편견이 배제된 객관적인 시각으로 경쟁자 제품의 하자나 약점을 어느 정도까지 지적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당신이나 ‘이웃’의 권리만큼 다른 회사의 권리도 똑같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세계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이 계명의 적용 범위는 엄청나게 넓다고 할 수 있다.
이 계명은 다른 사람에 대해 거짓 증언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금하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지를 문제로 대두시킨다. 거짓된 혹은 오도(誤導)하는 재무제표를 발행하는 것은 아홉째 계명을 어기는 것인가? 경쟁자를 거짓되게 폄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장된 광고는 잘못된 것인가? 해고가 임박해 있는 상태인데도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거짓된 확신을 심어 줄 때는 또 어떠한가? 인식이 실재를 종종 대신하는 세상에서, 그럴듯한 언변은 참된 진실을 가린다. 그러나 아홉째 계명은 하나님만큼은 우리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편 속임수는 가끔 성경에서도 저질러지고, 받아들여지고, 심지어는 승인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신학의 출처는 아홉째 계명을 포함한 성경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 보다 심층적인 논의는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진실과 거짓’ 부분을 보라.
Walter Brueggemann, “The Book of Exodus,” The New Interpreter’s Bible: Genesis to Leviticu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4), 431쪽.
같은 책, 848쪽.
같은 책, 432쪽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