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의 삶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전도자의 말처럼 일의 결과는 이 세상에서 영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좋을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책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도서의 내용은 몇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 부분의 끝에서는 반복 어구가 나온다. 소망을 잃은 전도자는 각 부분의 끝을 ‘알지 못할 것’, ‘알아내지 못할 것’이나 혹은 그에 해당하는 수사학적 질문 ‘누가 능히 통달하랴’로 마무리한다.
우리 행위의 궁극적 결과를 알 수 없다 (전7:1-14)
우리의 수고는 죽음과 함께 끝이 난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묘지에 가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 보라고 권한다(전 7:1–6). 무덤들을 비교하며 어떤 무덤이 더 우월하다 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묘지에 가서도 그저 무덤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하며 무덤이 주는 교훈을 내팽개친다. 이때 그들의 휘파람과 웃음은 가시나무가 탈 때 들리는 탁탁 소리와도 같다(전 7:6).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고사하고, 왜 오늘이 어제와 다른지조차 알아낼 수가 없다(전 7:10). 그날그날의 노동에서 얻는 좋은 결과를 기꺼이 누리면서도 우리 인생의 끝이 좋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인생의 끝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결말을 위해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위의 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악한 수단을 통해 얻으려던 결과물을 망치거나 앗아갈 장애물은 어느 때든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옳지 않는 시작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지금은 여론을 달래고 있지만 나중에는 대중에게 해를 입히는 정치인, 다음 분기에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번 분기의 손실을 숨기는 재정 담당 공무원, 자격이 되지 않는 직책에 지원한 후 성공할 것을 기대하며 속이는 졸업생 등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의존하는 자들이다. 그러는 동안 비록 그들의 소망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치유 불가능한 해를 끼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전7:15-28)
우리는 선을 좇아서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행위가 전적으로 좋은지 또는 악한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상상하는 중에도 사악함이 스며들어올 수 있으며 그 반대 경우도 있다(전 7:16-18).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선과 악에 대한 진리는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전 7:24). 이런 어려움을 강조하려는 듯 전도서 7장 28절에서 특징적 어구 ‘찾지 못하다’를 두 번 반복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전 7:18). 자만과 독선을 피하는 것이다. 훌륭한 자기 진단은, 우리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왜곡된 논리와 복잡한 술책을 동원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 7:29).
일에는 복잡한 면이 많고 고려해야 할 요인도 많으며, 도덕적 확실성은 대개 불가능하다. 그러나 윤리적 꽈배기 논리는 거의 언제나 적신호다.
왜곡된 권력과 공의 (전8:1-17)
권력 행사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권위를 가진 자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전 8:2-5).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권위를 정당하게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십중팔구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다(전 8:9). 공의는 왜곡되었다. 의인이 형벌을 받으며, 사악한 자가 상을 받는다(전 8:10-14).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전 8:13)과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의 기회를 향유하는 것이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 8:15).
앞에서처럼 이 주제의 끝에서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어구를 세 번 반복한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전 8:17). 전도자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제한된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좋은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탐색을 끝낸다. 비록 그가 몇 가지 좋은 행태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결과는 무엇이 진실로 의미 있는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