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의 핵심은 일에 관한 탐구다. 일은 일반적으로 “수고”(히브리어로 amal)라 불리며, 이 단어는 일의 고단함을 나타낸다. 전도서 1장 3절에서 이 주제를 소개한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자는 노동의 수고를 “헛되도다”라고 평가한다(전 2:1). 히브리어로는 ‘hebel[헤벨]’인데, 전도서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표현이며, 실제로는 ‘숨’(breath)이라는 뜻이다. 공허하고 덧없으며 영구적인 가치가 없는 것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쓴다. 이 단어는 전도서의 핵심 단어로 딱 들어맞는다. ‘숨’이란 본질상 순간적이며 식별 불가한 실체로, 금세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이 순간적인 공기의 들이마심과 내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머지않아 숨은 멎을 것이며 삶은 끝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헤벨은 덧없고 가치 없는 것, 즉 궁극적으로는 끝이 날 것을 묘사한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 “헛되도다”는 오역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익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벨의 참뜻은, 어떤 것은 덧없고 일시적인 가치만 갖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숨을 한 번 쉬는 것은 영구적인 가치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존재와 행동도 이와 같아서 이 무상한 인생에서 일시적이긴 하지만 나름 참된 의미가 있다.
배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라. 이 땅 위에는 배를 짓는 데 필요한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원재료가 널려 있다. 거기에 역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재간과 근면성을 더해 안전하고 성능 좋고 아름답기까지 한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어떤 배는 군사용으로, 어떤 배는 음식, 자원, 제조된 물자 및 사람들을 필요한 곳으로 운반하는 용도로 쓰인다. 진수식이 시작되면 그 배와 관련 있는 모든 이들이 성공을 축하한다. 그렇게 그 배가 조선소를 떠나면, 이제 조선소 사람들은 그 배를 일절 제어할 수 없다. 어리석은 자가 선장이 되어 배를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고, 그 배를 전세 내어 마약, 무기 또는 심지어 노예를 밀수입할 수도 있다. 선원들이 혹사를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다행히 고상한 일을 맡아 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낡아 폐물이 되는 상황은 면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박 해체 공장으로 보내져 재활용 금속과 폐기물로 구분되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훌륭하게 지어졌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우리도 그 배와 같아서 살아 있는 한, 이런 긴장 가운데서 일을 해야 한다.
서론에서 논의했던, 지구를 도는 태양 이미지(전 1:5)가 생각난다. 이 커다란 천체가 하늘에서 하는 쉴 새 없는 활동은 빛과 열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매일 살아가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 천체는 전혀 변화가 없다.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전 1:9). 이것은 우리의 일에 관한 영원한 선고는 아니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관찰에서 나온 논평이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