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자기 재산 불리려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겔 18:8a)

아티클 / 성경 주석

   성경학자들은 ‘구약 율법에서 이자를 완전히 금한 것일까?’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 왔다.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가 에스겔 18장 8절 상반절을 가장 자연스럽게 번역했다. “[그는] 이자를 받거나 재산을 불리기 위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융자금에 이자를 붙이는 것을 성경에서 금한다고 이해했다. 물론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자본의 생산적인 투자를 심하게 제한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성경해석자들은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 번역한 것처럼 과도한 이자를 금지하는 것으로 내용을 완화시킨다. 이런 한층 완화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학자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오늘날 제로 쿠폰채(zero-coupon bond)로 불리는 발행 시점의 할인은 허용했고, 대출금이 제때 상환되지 않더라도 ‘부가이자’를 붙이는 것은 금지했다고 주장한다.[1] 앞서 언급한 ‘담보’라는 주제에서 그랬듯 오늘날 이자 체계가 합법적인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TOW 웹사이트 핵심 주제 코너에서 “금융” 부분을 보라. 대신 둘 중 한 가지 경우가 불러오는 결과를 살펴볼 생각이다.

 

   좀 더 엄격한 해석을 따른다면, 돈을 가진 사람들은 돈을 빌려주어야 하느냐 아니면 전혀 빌려주지 말아야 하느냐의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이자 추징도 안 되고, 담보물조차 소유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금지하셨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신 15:8).

 

   예수님도 누가복음 6장 35절에서 이 명령을 반복하시는데, 심지어 확대하여 해석하신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융자는 무엇보다 채무자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채권자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채권자의 두려움은 이차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잠재적인 채권자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고, 잠재적인 채무자는 그 자본을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한편 현대의 이자 체계가 정당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자본을 생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자본을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의 문자적인 뜻도 바로 이와 같다(마 25:14-30).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중한 보물인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겠노라 약속하셨다. 만약 투자할 수 있는 여분의 자본이 있다면 그것은 공급하시는 하나님 덕분이며, 따라서 공정한 투자나 기부를 통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어야 한다. 경제 개발은 금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개발이 절실하다. 다만 자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산적인 유익이어야지 자본을 가진 사람의 사욕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Oriental and Biblical Studies, Collected Writings of E. A. Speiser, ed. by Finkelstein and Greenberg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1967), 131-133, 140-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