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성벽 건축 사업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위협에도 직면했다. 일부 부유한 유대인 귀족과 관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편승해 자기 주머니를 불리고 있었다(느 5장). 이들은 동족인 유대인에게 돈을 빌려 주고 율법에 명백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출 22:25)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받으려 했다.[1] 그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채무자는 소유한 토지를 잃었고 자식까지 종으로 팔도록 강요받았다(느 5:5). 이와 관련해 느헤미야는 부자에게 이자 받는 것을 중단하고 채무자로부터 취한 것은 무엇이든지 되돌려 줄 것을 주장했다.
동족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취한 사람의 이기심과는 대조적으로 느헤미야는 자신의 지위를 개인 재산 축적에 이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는 자신의 선임 총독과 달리 개인 비용 충당을 위해 백성에게 세금 부과하기를 거부했다(느 5:14-16). 대신 느헤미야는 백성에게 징세하지 않고 개인 비용으로 많은 사람을 자의 상으로 초대해 넉넉하게 먹도록 했다(느 5:17-18).
어떤 의미에서 귀족과 관리는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원론의 죄를 지었다. 이들의 경우 자기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길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도리어 경제생활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양 적극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측면에 관심을 쏟으시기 때문에 경제생활은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느헤미야는 이들(유대인 채무자를 종으로 팔아넘긴 귀족)에게 설명한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느 5:9). 느헤미야는 고리대금업 같은 경제 문제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연결하고 있다.
느헤미야 5장의 문제는 현재 우리 상황과는 거리가 먼 법적 · 문화적 배경에서 제기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 지위나 특권, 심지어 우리 일을 통해 우리가 사적으로 얼마큼의 이익을 취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도록 도전을 던진다. 우리는 대출을 해 주고 이자를 받는 은행에 돈을 예치해야 하는가? 직장에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특혜가 누군가의 상당한 희생을 수반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 누려야 하는가? 이자를 받지 말고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강제로 사람을 종으로 팔지 말라는 느헤미야의 구체적인 명령은 우리 시대엔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그 명령의 근본이 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도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 5:19).
느헤미야에게 그랬듯이, 오늘날 일꾼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역시 우리가 우리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현실에 적용해 보면, 이는 우리 각자가 직원, 동료, 고객, 가족, 일반 대중 등 우리 일에 의지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돌볼 책임을 하나님 앞에 지고 있다는 뜻이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오늘날 직장에서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진 않지만,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바로 사람들을 우선순위에 놓으라는 것이다.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 주는 걸 성경이 금하는지는 기독교 신학 역사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문제다. TOW 웹사이트(www.theologyofwork.org) 핵심 주제 코너에서 ‘금융’(Finance) 부분을 클릭해 “금융에 대한 개요”(Finance Overview)를 읽어 보라.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