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풍성한 경제가 가나안 족속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것에 기반을 뒀다는 사실은 조금은 불편한 질문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땅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정복을 인정해 주시는 걸까? 하나님은 종족 전쟁을 용인하시는 걸까?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 족속보다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더 있었다는 말인가? 정복에 대한 자세한 신학적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1] 그렇게 야기된 무수한 질문에 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 명심할 것은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해 소집된 세력이 방대하고 대단히 강하던 고대 근동의 무법천지 같은 곳에서 자기 백성 만나기를 의도하셨다.
2. 군사 정복이라는 일이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일이지만, 그것은 그 뒤에 나오는 다른 모든 일의 모델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일과 리더십의 면면을 찾아볼 수 있으나, 사람을 땅에서 쫓아내는 것은 그런 적용점의 하나가 아니다.
3.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라는 명령은(수 1:1-5) 대단히 특수한 명령이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이나 다른 인종에게 하시는 일반적인 성질의 명령은 아니다.
4. 가나안 족속의 멸절은 악명 높았던 그들의 사악한 생활방식 때문이었다. 가나안 족속은 어린아이 공양, 신접, 무당 및 강신술 등에 참여했는데, 그것은 온 세상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길 원하셨던 하나님이 택한 백성(신 18:10-12) 가운데서는 용납하실 수 없던 것이었다. 그 땅은 우상숭배가 근절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온 세상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2]
5. 라합같이 회개한 가나안 사람은(수 2:1-21 6:22-26) 살아남았다. 실제로는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멸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6.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더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도 결국 가나안 족속 못지않게 사악한 행위를 그대로 했다. 가나안 족속처럼 이스라엘 족속도 다른 나라의 정복으로 그 땅에서 쫓겨나는 고난을 겪을 것이며, 성경은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대상이다(암 3:1-2).
7. 힘에 대한 완전한 크리스천 윤리는 여호수아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전부를 구체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여러 나라를 정복하시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목숨을 내주신 데서(막 10:42-45 요 10:11-18) 찾아볼 수 있다. 힘에 대한 성경적 윤리는 궁극적으로는 희생과 겸손을 바탕으로 한다.
정복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책을 보라. C. S. Cowles, Eugene Merrill, Daniel L. Gard, and Tremper Longman III, Stanley N. Gundry, ed., Show Them No Mercy: 4 Views on God and Canaanite Genocide (Grand Rapids: Zondervan, 2003).
J. Gordon McConville and Stephen N. Williams, Joshua: The Two Horizons O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10), 113-114쪽을 보라.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