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의 백성에게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백성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을 구현한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요단강 가운데에서 기념하는 돌들을 가져다 세움으로써 이 복을 축하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번성과 안정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일은 항상 그들을 위해 앞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에서 나왔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에서 끊어질 때마다 그들의 수고의 궤적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사사기 2장 10-11절에서 들리는 칙칙한 곡조가 증거한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이 그로 인해 직면한 문제는 그들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우리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을 잘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릴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에서 우리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 잘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사이의 긴장, 혹은 로라 네쉬(Laura Nash)가 이 역동성을 탁월하게 분석한 대로, “사리사욕이라는 나 중심 시스템”과 “다른 사람의 행복한 삶” 사이의 긴장을 느낀다.[1] 그것은 아무도 우릴 돌봐주지 않는 게 두려워서 우리가 기어이 일등이 되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기억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중 상당수는 일에서 우리가 거둔 성공의 기념물(상장, 기념패, 사진, 훈장, 자격증 같은 것)을 간직한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내가 마땅히 얻을 걸 가진 거야’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매일매일 여기서 나와 함께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것이 다른 사람을 더 돌보게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해 주면서, 우리도 여전히 돌봄을 받고 있다는 기분을 받게 하지 않을까? 이것을 시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를 지내는 동안, 당신에게 직접 일어나는 일이든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든 간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좋은 일들을 마음속으로 기억해 두거나 적어 놓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요단강변에 세웠던 돌처럼, 이런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일종의 기념석이 된다. 본문에 따르면 그 기념하는 돌들은 그들에게 아주 강력한 회상이었고,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수 4:1-9).
Laura Nash, Believers in Business (Nashville: Thomas Nelson, 1994), 96쪽.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