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제사의 목적은 때때로 발생하는 정결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희생제물을 ‘드린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문자대로 하면 ‘(그것을) 가까이 가지고 오다’라는 의미다. 희생제물을 성소 가까이로 가지고 오려면 예배자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예배자의 개인 비행의 정도는 주요 사항이 아니었다. 불결로 인한 오염은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죄를 저지른 비교적 소수인 사람과 그런 악행이 그들 중에서 횡행하도록 허용한 침묵하는 다수로 구성된 전체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를 부패시킨 책임을 백성 전체가 집단적으로 져야 했으며, 국가 파멸에 준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벗어난 것에 합당한 이유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했다.[1]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을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여전한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건 참으로 중차대한 문제다.
직장에서 크리스천은 세상이 도대체 무엇을 ‘성공’이라고 정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룩한 조언을 구하는 것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성공에서 거룩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일터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일은 우리 노동의 열매를 향유하는 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스라엘이 드린 희생제물이 여호와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레 1:9, 16)이었듯이, 바울은 크리스천에게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골 1:10)라고 일렀는데 이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직장 내에서 두루 다니며 ‘어떻게 하면 이 직장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임재하실 장소가 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몸담은 직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것 중에서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 표현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가? 그곳에는 모든 이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특징이 있는가? 근로자들을 해(harm)로부터 보호해 주는가? 우리의 직장은 지역사회를 더욱 충만하게 번창하도록 하는데 도움될 물자와 용역을 생산해내는가?
Jacob Milgrom, Leviticus: A Book of Ritual and Ethics, A Continental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4), 15쪽.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