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불필요한 걱정에 시달린다. 크리스천들은 악인은 멸하고, 의인은 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언제나 이 각본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악인이 번영하면, 세상이 잘못되었고 또 자신들의 믿음이 헛되다고 느낀다. 시편 49편 16-17절 말씀을 보자.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경건하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요, 신앙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을 버는 것에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자들은, 언젠가 반드시 잃을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눅 12:16-21). 부자들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시리즈의 3권 《일하는 크리스천을 위한 사복음서 · 사도행전》 3장의 “눅 6:25; 12:13-21; 18:18-30” 부분을 보라. 이것은 단지 악인은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악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그제야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그 사람을 집어삼킨 재앙 간의 관계를 깨닫는다. 시편 52편 7절은 이러한 상황을 묘사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시편 62편 10절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악인의 길을 따르거나 부를 획득하는 것으로 안전을 추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부패 행위를 저지르거나 인맥의 힘을 빌려 잘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과 똑같이 해서 이 가난에서 벗어나 볼까?’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했다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과 같은 수치를 당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과 같은 죄를 선고받을 뿐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했다면,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믿어야 한다. 시편 50편 16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부를 얻기 위해 사기 행위를 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특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척하면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일과 또 일하는 방식에서 무엇을 보는지 물어봐야 한다. 혹시 ‘축복’, ‘하나님의 뜻’, ’은혜’ 등을 운운하면서 윤리적으로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사람들을 차별하며 부당하게 다루는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외견상의 성공을 무작정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일을 좀 더 자제하면서,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좀 더 꾸밈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