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두 가지 일화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100명의 선지자의 목숨을 구한 오바댜의 첫 번째 일화는 비윤리적인 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결정, 곧 직장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부딪치는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댜는 아합 왕국의 수석 행정관이었다. 아합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으로 유명하다. 아합의 부인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아합 왕국의 고위 관리였던 오바댜는 그 작전 명령을 먼저 듣고, 선수를 치기 위한 수단도 강구했다. 그는 100명의 선지자를 두 동굴에 숨긴 후 위기 상황이 누그러질 때까지 그들에게 떡과 물을 제공해 줬다. 그들이 살아남은 건 오로지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한 사람(왕상 18:3)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권세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부패하거나 악한 기관에서 일하면 사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직장에서 힘겹게 버티느니 차라리 그만둬 버리고 좀 더 거룩한 일을 찾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우리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일 때가 흔히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그 어떤 일터도 완벽하게 선한 곳은 없다. 어디에서 일하든 우리는 결국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일터가 부패하면 할수록 거기엔 더욱더 경건한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더 악을 덧붙여 행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 방법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곳에 남기를 원하실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히틀러에게 반대하는 일단의 장교들이 압베어(Abwehr: 나치 독일 군사 정보기관)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형됐다. 자신이 히틀러 군대에 남아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다. “질문할 줄 아는 책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궁극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 속에서 영웅처럼 빠져나올 수 있나’가 아니라,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다.”[1] 하나님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우리 책임이 우리 자신을 도덕적으로 순결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열망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New York: Touchstone, 1997), 7쪽.
성경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