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적군인 아람(시리아)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나병을 치료해 줬을 때, 그것은 일의 영역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본문에 대해 쓴 자크 엘룰(Jacques Ellul)의 통찰력 있는 글에 보면 “병들었던 사람, 특히 나병 환자가 치유됐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1] 왜냐하면 그 치유는 일할 능력을 회복해 줬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는 그 치료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통치하는 일, 이스라엘 왕을 대하는 일에서 왕에게 필요한 조언하기 등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회복해 줬다.
흥미롭게도 이 치유 사건은 엘리사 자신이 세운 조직의 윤리적 문화도 회복시켰다. 나아만은 그 치료에 대해 넉넉한 보상을 제안했으나 엘리사는 단순히 여호와의 뜻 행한 걸 가지고 무슨 대가를 받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엘리사의 사환 중 하나인 게하시는 약간의 추가 보수를 챙길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아만 뒤를 쫓아가서 엘리사가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악의로 취득한 이익을 숨기고 엘리사에게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나아만에게서 떠났던 바로 그 나병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사는 자기 조직에서 부패를 용납하는 것은 자신이 평생 하나님을 섬긴 것의 유익을 다 앗아갈 것을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아만 개인이 한 행동도 또 다른 요점을 보여 준다. 나아만에게는 나병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나아만은 치료가 필요했지만 치료에 대해 그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선지자와 극적으로 상봉해서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더러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하자 처음에는 그 진짜 해결책을 명백히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엘리사도 아니고 엘리사의 사자를 통해 그 답변을 듣자 나아만은 화가 났고 그냥 가 버렸다. 해결책도,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도 나아만이 보기엔 전혀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 못됐던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종종 이런 이중적인 어려움이 되풀이된다. 첫째로, 최상위 리더는 자신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아래 직급 직원에게서 나온 통찰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시한다.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 김영사 역간)에서 그가 “레벨 5 리더”(level 5 leader)라고 부르는 사람의 첫 번째 징표로 겸손, 많은 인재의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자발성을 들었다.[2] 둘째로, 그 해결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그 리더가 상상하던 접근법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아만 같은 많은 리더들은 그들에게 말이 통하게 말하려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부하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기관에서는 겸손한 보스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용기 있는 부하도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이 일화 전체를 움직이는 인물은 가장 천한 계급의 사람, 그 나라에서 가장 낮은 사람, 그가 기습 작전을 벌여 포로로 잡아다 자기 아내의 몸종으로 준 어린 소녀였다(왕하 5:2). 이것은 교만과 그릇된 기대가 얼마나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지, 그럼에도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뚫고 나오는지 탁월하게 상기시켜 준다.
Jacques Ellul, The Politics of God & the Politics of Man (Grand Rapids, MI: Eerdmans, 1972), 35쪽.
Collins, Good to Great, 22-25쪽.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김영사 역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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