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경험을 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칫하면 우리를 재앙과 역경에 이르도록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큰 희생과 어려움을 요구할 수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1]
그러나 요나의 경우, 어려움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요나가 불순종하면서 생겨났다. 파선을 당하고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간 장사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치려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가 해와 바람에 노출되고 절망에 빠지면서 거의 자살 직전까지 간 것은(욘 4:3-8) 하나님이 그를 어려움에 빠뜨려서가 아니었다. 요나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욘 4:2)의 축복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요나를 돌보시고 위로하셨다.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는 요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선원들이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대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를 불쌍히 여기게 하신다(욘 1:12-14).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셔서 요나가 익사하지 않게 하시고(욘 1:17), 그런 다음 물고기에게 요나를 마른 땅에 토해 내라고 말씀하신다(욘 2:10). 하나님은 니느웨에 있는 요나의 원수인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이 요나를 높이 평가하고 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끔 만드신다. 하나님은 요나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니느웨에서 그에게 박넝쿨과 그늘을 제공해 주신다(욘 4:5-6).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소명이 꼭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맞바꿔져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고방식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했어도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해 특별한 조치들을 취하셨는데, 만약 요나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더라면 그가 어떤 축복을 누렸을 것인지 상상이 되는가. 여행 수단,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줄 친구들, 자연 세계와의 조화, 박넝쿨과 그늘, 사람들 가운데서의 평가, 맡은 일의 놀라운 성공 ……. 만약 요나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이런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얼마나 더 큰 축복들을 누렸을지 상상해 보라. 이 축복이 요나의 불순종으로 그나마 축소된 것임을 생각하면, 섬김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두 축복으로 가는 초청이다.
이 주제에 대한 고전적 설명은 1937년에 첫 출판된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New York: Macmillan, 1966)을 보라.
성경 주석